얼굴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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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준성 작성일2026-05-04 19:57 조회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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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여백 / 이병룡
반쯤 그려야 얼굴이다
난희얼골*의 살결이 고개를 세운다
묵향이 여백을 쫓아가는 동안
얼굴에 그려지는 획은 딱따구리가 되는 거야
얼굴을 벽에 걸고
가느다란 먹선을 따라 여백을 메워간다
방명록 종이에 눈길이 머물 때마다
스승 김환기의 목소리가 이름을 부른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파리 뒷골목에서 마주친 석판화처럼
얼굴이 묻어난다
몰락하는 것은
여백에서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야
수묵의 선들이 여백을 지켜줄 수는 없어
여백을 벗어나지 못한 얼굴은
얇은 먹선으로, 허름한 표정으로 살아가야 해
여백으로 돌아오는 얼굴,
너는 거울을 들고 먹선 위를 위태롭게 걸어간다
성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몇몇 여백의 이야기로
너의 수묵화를 비춘다고 한들
누군가 흘깃 다녀가는 방명록이 무슨 대수겠어
하얀 수사복을 입은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아카펠라 소리가
여백으로 스며든다
‘Song of Joy(환희의 찬가)’처럼 생겨나온 너의 바람이
얼굴 어루만지며 노트르담 대성당 담벼락에 기대어 있다
여백은
얼굴의 난간이 되어주는 것, 슬픔의 난간이 되어주는 것
온 세상이 풀 한 포기 없이 사라진다 한들
슬픔의 등급을 여백의 먹선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먹빛의 농담으로 여백의 표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여백은 축나고 먹선의 굵기는 점점 두꺼워지고,
*난희얼골: 김환기 화백이 제자 석난희 화가의 얼굴을 방명록에 그린 수묵화.
최준성의 불초한 평론:
위 이병룡 시인의 시는 '여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로 보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동양화는, 구체적으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서양화와는 달리, 여백을 많이 활용합니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감상자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하게끔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의 대상을 좀 더 깊이 생각케 하여 여운을 갖게 합니다 윗시에서 이런 여백의 특성에 주목하여 여백에 먹선이나 수묵으로 채워진다면 그만큼 작품의 가치가 상실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윗시는 김환기 화백의 수묵화를 감상한 것이 창작 동기로 보이며 그림에서 여백을 살려야 그림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인이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창작 의도는, 효율성만 중시되는 현실 사회에서 유유자적하고 여유로운 삶이 참된 삶이라는 주제 의식에 방점을 찍고자 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윗시에서 시인의 수준 높은 경지와 피나는 습작 과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70이 넘는 나이에도 끊이지 않는, 시인의 장인 정신을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
반쯤 그려야 얼굴이다
난희얼골*의 살결이 고개를 세운다
묵향이 여백을 쫓아가는 동안
얼굴에 그려지는 획은 딱따구리가 되는 거야
얼굴을 벽에 걸고
가느다란 먹선을 따라 여백을 메워간다
방명록 종이에 눈길이 머물 때마다
스승 김환기의 목소리가 이름을 부른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파리 뒷골목에서 마주친 석판화처럼
얼굴이 묻어난다
몰락하는 것은
여백에서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야
수묵의 선들이 여백을 지켜줄 수는 없어
여백을 벗어나지 못한 얼굴은
얇은 먹선으로, 허름한 표정으로 살아가야 해
여백으로 돌아오는 얼굴,
너는 거울을 들고 먹선 위를 위태롭게 걸어간다
성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몇몇 여백의 이야기로
너의 수묵화를 비춘다고 한들
누군가 흘깃 다녀가는 방명록이 무슨 대수겠어
하얀 수사복을 입은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아카펠라 소리가
여백으로 스며든다
‘Song of Joy(환희의 찬가)’처럼 생겨나온 너의 바람이
얼굴 어루만지며 노트르담 대성당 담벼락에 기대어 있다
여백은
얼굴의 난간이 되어주는 것, 슬픔의 난간이 되어주는 것
온 세상이 풀 한 포기 없이 사라진다 한들
슬픔의 등급을 여백의 먹선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먹빛의 농담으로 여백의 표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여백은 축나고 먹선의 굵기는 점점 두꺼워지고,
*난희얼골: 김환기 화백이 제자 석난희 화가의 얼굴을 방명록에 그린 수묵화.
최준성의 불초한 평론:
위 이병룡 시인의 시는 '여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로 보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동양화는, 구체적으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서양화와는 달리, 여백을 많이 활용합니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감상자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하게끔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의 대상을 좀 더 깊이 생각케 하여 여운을 갖게 합니다 윗시에서 이런 여백의 특성에 주목하여 여백에 먹선이나 수묵으로 채워진다면 그만큼 작품의 가치가 상실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윗시는 김환기 화백의 수묵화를 감상한 것이 창작 동기로 보이며 그림에서 여백을 살려야 그림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인이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창작 의도는, 효율성만 중시되는 현실 사회에서 유유자적하고 여유로운 삶이 참된 삶이라는 주제 의식에 방점을 찍고자 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윗시에서 시인의 수준 높은 경지와 피나는 습작 과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70이 넘는 나이에도 끊이지 않는, 시인의 장인 정신을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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