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양반, 상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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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준성 작성일2025-05-27 17:54 조회1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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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소고기처럼 등급을 매기는 수저등급론은,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금수저 ▶ 은수저 ▶ 동수저 ▶ 흙수저’로 나누는, 경제불평등의 슬픈 자화상을 반영한다. 이러한 수저론에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이 투영되어 있다.
수저론은, 사회 부조리를 냉소하는 분위기를 반영하는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날 심화되는 양극화는 계층 간의 갈등을 첨예화시켜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경고를 함축하고 있다. 평생 안 입고 안 먹어도 마련할 수 없는 부동산은, 자라나는 세대는 물론, 집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집을 소유하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는 계층의 단계를 넘어선 부자와 빈자로 나뉘는 계급화 현상으로 새로운 신분사회로 가고 있음을 의미할지 모른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없는 집 애들도 머리가 있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소위 명문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우리의 부모들은 신분 상승을 위해 본인은 안 먹고 안 입더라도 자식은 꼭 대학을 보내려고 했다. 즉, 대학이라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통해 신분 상승의 희망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없는 집에서는 수재가 아닌 바에는 SKY대학에 간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60~80년대가 오히려 살기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정도다. 왜냐하면 그때는 희망이 원천 봉쇄되지 않았고 상대적 박탈감도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이라는 기능이 있지만 계층을 재생산하는 부정성도 있다. 있는 집 자식만이 명문대를 갈 수 있음은, 곧 바로 부익부 빈익빈으로 확대되어 계급이 세습되는 위험성을 소지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사람의 차별을 심화시키는 학교를 다니지 말아야 한다며 학교 무용론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꼭 양반, 상놈 같은 신분제도가 있어야 신분사회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실제로 신분사회로 회귀하고 있는지 모르는 위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수저론을 극복하기 위해선 법적, 정치적 평등보다는 경제적 평등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도 자아실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이는 생활 보조금 차원을 넘어선,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부자는 재물을 움켜쥐고 늘릴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재물을 나눌까부터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한 수저론 시대에 사는 우리는 임대소득, 부동산가격 상승과 같은 불로소득보다는 근로소득, 사업소득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땀 흘려 일한 자에 소득이 분배되는 것이 정의이고, 그래야 부동산 소유 여부로 인한 계층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저론은, 사회 부조리를 냉소하는 분위기를 반영하는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날 심화되는 양극화는 계층 간의 갈등을 첨예화시켜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경고를 함축하고 있다. 평생 안 입고 안 먹어도 마련할 수 없는 부동산은, 자라나는 세대는 물론, 집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집을 소유하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는 계층의 단계를 넘어선 부자와 빈자로 나뉘는 계급화 현상으로 새로운 신분사회로 가고 있음을 의미할지 모른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없는 집 애들도 머리가 있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소위 명문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우리의 부모들은 신분 상승을 위해 본인은 안 먹고 안 입더라도 자식은 꼭 대학을 보내려고 했다. 즉, 대학이라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통해 신분 상승의 희망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없는 집에서는 수재가 아닌 바에는 SKY대학에 간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60~80년대가 오히려 살기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정도다. 왜냐하면 그때는 희망이 원천 봉쇄되지 않았고 상대적 박탈감도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이라는 기능이 있지만 계층을 재생산하는 부정성도 있다. 있는 집 자식만이 명문대를 갈 수 있음은, 곧 바로 부익부 빈익빈으로 확대되어 계급이 세습되는 위험성을 소지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사람의 차별을 심화시키는 학교를 다니지 말아야 한다며 학교 무용론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꼭 양반, 상놈 같은 신분제도가 있어야 신분사회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실제로 신분사회로 회귀하고 있는지 모르는 위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수저론을 극복하기 위해선 법적, 정치적 평등보다는 경제적 평등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도 자아실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이는 생활 보조금 차원을 넘어선,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부자는 재물을 움켜쥐고 늘릴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재물을 나눌까부터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한 수저론 시대에 사는 우리는 임대소득, 부동산가격 상승과 같은 불로소득보다는 근로소득, 사업소득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땀 흘려 일한 자에 소득이 분배되는 것이 정의이고, 그래야 부동산 소유 여부로 인한 계층화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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